휴머니스트 오블리주

휴머니스트 오블리주

선의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저자 : 애덤 파이필드 / 역자 : 김희정
분야 : 인문/교양
출간일 : 2017-12-08
ISBN : 9788960516144
가격 : 18,000원

신념과 이상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인류의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휴머니스트도 그 뜻을 실현하는 곳은 현실이다!   책 소개 1922년 중국에서 태어난 미국인. 30년 넘게 연합국구제부흥기관, 국제개발처, 해외개발협의회 등에서 국제 개발 업무를 한 인물. 1980년 유니세프 수장에 올라 조직 안팎의 거센 저항과 비난을 원대한 목표와...

책소개

휴머니스트 오블리주

선의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신념과 이상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인류의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휴머니스트도 그 뜻을 실현하는 곳은 현실이다!

 

책 소개

1922년 중국에서 태어난 미국인. 30년 넘게 연합국구제부흥기관, 국제개발처, 해외개발협의회 등에서 국제 개발 업무를 한 인물. 1980년 유니세프 수장에 올라 조직 안팎의 거센 저항과 비난을 원대한 목표와 무모할 정도의 추진력으로 뛰어넘은 인물. 대중 매체, 유엔 회의실, 워싱턴의 권력자들 사무실을 누비며 예방 가능한 아이들의 죽음을 방관하는 것은 남부끄러운 일이라고 외치고 다녔던 인물. 값싸고 단순한 처치로 아동 사망률을 줄이고자 전쟁마저 멈추게 하는 협상력을 발휘한 인물. 71개국 국가수반과 88명의 정부 대표를 모아 ‘어린이를 위한 세계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며 유니세프의 위상을 한껏 드높인 전설적 인물 짐 그랜트.

그는 유니세프 총재에 취임해 캄보디아, 엘살바도르, 르완다, 수단,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유고슬라비아 등 내전과 기아를 겪는 저개발 국가에서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굴의 리더십으로 유니세프를 이끌었다. 날마다 4만 명의 어린이가 죽어 가는 현실을 바꾸고자 유니세프 조직 안팎의 노골적인 저항과 냉소에 굴하지 않고 ‘아동 생존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며 사람들의 ‘기대 수준 자체를 완전히 바꾼’ 혁명을 이루었다. 그는 유니세프라는 국제기구에서 수치화된 목표를 세우는 것의 위력을 보여 줌으로써 세계 보건과 국제 개발을 위해 일하는 수많은 단체와 후원자의 행동 방식을 바꾸었다.

그랜트는 신념과 이상을 가진 한 인간이 세상에서 그것을 실현해 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현실적이고 치열한 삶으로 보여 주었다.

 

지은이  애덤 파이필드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시카고 선타임스』, 『빌리지 보이스』, 『필라델피아 매거진』,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등에 기고해 왔고,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전속 기자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캄보디아 인 수양 형제의 회고록인 『블레싱 오버 애쉬스 』 가 있다. 년부터 년 사이 ‘유니세프 미국 기금’의 편집 및 크리에이티브 부문 부국장을 역임했다.

 

옮긴이  김희정

옮긴이 김희정은 서울대 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가족과 함께 영국에 살면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인간의 품격』, 『채식의 배신』, 『그들이 말하지 않는 가지』, 『견인 도시 연대기』(전 4권), 『코드북』, 『두 얼굴의 과학』, 『우주에 남은 마지막 책』, 『영장류의 평화 만들기』, 『아인슈타인과 떠나는 블랙홀 여행』, 『내가 사는 이유』, 『랩 걸』 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1922년 중국에서 태어난 미국인. 30년 넘게 연합국구제부흥기관, 국제개발처, 해외개발협의회 등에서 국제 개발 업무를 한 인물. 1980년 유니세프 수장에 올라 조직 안팎의 거센 저항과 비난을 원대한 목표와 무모할 정도의 추진력으로 뛰어넘은 인물. 대중 매체, 유엔 회의실, 워싱턴의 권력자들 사무실을 누비며 예방 가능한 아이들의 죽음을 방관하는 것은 남부끄러운 일이라고 외치고 다녔던 인물. 값싸고 단순한 처치로 아동 사망률을 줄이고자 전쟁마저 멈추게 하는 협상력을 발휘한 인물. 71개국 국가수반과 88명의 정부 대표를 모아 ‘어린이를 위한 세계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며 유니세프의 위상을 한껏 드높인 전설적 인물 짐 그랜트.

이 책은 짐 그랜트가 유니세프 3대 총재로 재임했던 15년을 중심으로 그의 치열하고 대담했던 삶을 그린 에세이다. 저자는 ‘유니세프 미국 기금’에서 일하면서 짐 그랜트에 관한 책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썼다. 그는 짐 그랜트를 가리켜 “현대사에 이토록 심오한 영향을 끼치고, 빈곤을 상대로 한 투쟁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깨부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짐 그랜트는 고결한 신념과 이상을 가진 한 인간이 세상에서 그것을 실현해 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현실적이고 치열한 삶으로 보여 주었다. 그 과정에서 이상을 향한 헌신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신념과 이상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 선의를 가진 인간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어디까지 던져야 하는지,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짐 그랜트라는 인간의 이야기이자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킨 한 개인의 이야기는 선의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음을, 인류의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휴머니스트도 그 뜻을 실현하는 곳은 현실임을 깨닫게 한다.

 

유니세프의 비약적인 발전, 아동 사망률을 줄이는 게 답이다

 

그는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첫 공식 성명에서 유니세프의 활동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역설해 직원들을 긴장시켰다. 해마다 1400만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죽음을 말하며 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더 많은 행동을 촉구했다. 이사회와도 갈등을 빚었다. 유례없는 일이었다. 세계적 불황으로 유엔 전반의 긴축 정책이 시행되던 마당에 전문가 팀을 만들자는 제안과 함께 대규모 직원 채용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겉치레라고는 보이지 않는 소탈함, 직설적이고 활달한 그는 유엔 외교관 세계에선 이질적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미친 미국인’이라 부르며 수군댔다.

동지들을 모으고 직원들 사기를 북돋고 세계를 누비면서도 유니세프를 향상시킬 방법을 찾았다. 그랜트는 유니세프의 비약적인 발전을 구상했다. 획기적이지만 단순하고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것, 대중을 설득하기 쉽고 홍보 효과가 있는 것을 원했다.

어린이 죽음은 대부분 설사, 영양실조, 폐렴, 홍역 등 몇 가지 안 되는 원인이었다. 의학 기술이나 비싼 시설 없이 기본적 처치로 예방 가능한 것이었다. 모든 걸 하려고 동분서주하는 대신 정말 심각한 문제에 집중하는 것. 조심스럽게 선택하고 목표를 정한 다음 자원과 열정을 쏟아붓는 것. 이것이 비약적 발전을 이루는 길이었다. 이것이 아동 사망률을 낮추는 지름길이었다. ‘아동 생존 혁명’이 시작됐다.

 

아동 생존 혁명은 간단한 메시지와 구체적 대안으로, 예방 접종과 경구 재수화염

 

사업 초기의 관심은 경구 재수화염이었다. 소금과 설탕을 일정 비율로 섞어 물에 타서 먹이면 아이들의 설사병을 잡을 수 있다. 그야말로 값싸고 사용 간편하고 실행 가능성이 높았다. 『스틱!』이라는 책에는 경구 재수화염을 아동 생존 사업의 핵심으로 삼은 그랜트를 일러 “메시지의 명수”라고 했다. 간결한 메시지와 구체적 대안, “이 봉지는 차 한 잔 가격도 안 되지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대조를 통해 효과를 극대화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그랜트가 의도한 바였다. 값싸고 간단한 노력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 누구나 실행할 수 있다는 것.

그랜트는 경구 재수화염 봉지를 셔츠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넣고 다녔다. 그러다가 아픈 아이를 둔 엄마에게 사용법을 알려 주며 나눠 주었다. 일국의 대통령, 총리 등 가릴 것 없이 사업을 홍보할 만한 대상을 만나면 뜯어서 시연하곤 했다.

그랜트의 관심은 예방 접종으로 옮겨 갔다. 설사보다는 덜 거북한 주제라서 홍보하기 쉽다는 점, 측정 가능하고 결과를 내놓기 용이하다는 게 큰 이유였다. 결국 경구 재수화염과 예방 접종은 어린이 생존율을 끌어올리는 ‘쌍발 엔진’ 역할을 했다.

 

조직 안팎의 거센 저항과 우려, 불신이 들끓다

 

‘아동 생존 혁명’은 험난했다. 배타적이고 편협한 “백인 남자들만으로 이루어진 클럽”이었던 유니세프 지도부는 그랜트 식의 소란스러운 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조직 내부의 냉소적 분위기는 “거의 모든 이가 그랜트에게 반대하는 순간이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지. 아동 생존 혁명이라니”, “웬 정치 공작이냐”는 반응부터 유니세프는 “우물 파고, 비상식량 조달 프로그램 운영하고, 산파 물품을 공급하는 게” 본연의 임무라는 비난이 일었다. (125쪽)

 

“그랜트라는 사람 자체를 싫어하는 거였어요. 그때까지 이루어 놓은 일들을 무시했기 때문이지요. 혹은 그런 인상을 줬거나요.” 그들은 또 “그랜트가 사용하는 방법도 싫어했습니다.” (...) 조셉은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 “고집스럽고 보수적인 무리들이 한걸음 한걸음 방해를 하면서 목숨을 걸고 그랜트에게 저항 작전을 폈지요…. 하지만 그랜트는 그런 일로 포기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126쪽)

 

조직의 저항은 방식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아동 사망 같은 ‘증상’에만 몰두한다는 비판, 빈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장기적인 상향식 해결책을 무시한다는 비판 등이 넘쳐났다. 그랜트는 논리가 확실했다. 바로 이 ‘증상’이 가난한 사람의 잠재력을 파괴한다, 상황을 컨트롤할 능력을 감소시킨다, 선택의 범위를 좁혀 장기 개발의 잠재력을 없앤다는 것이었다.

가장 심한 반대세력은 세계보건기구였다. ‘실행 가능성’과 ‘성과’를 중시하는 그랜트의 방식이 ‘지속 가능성’과 ‘탄탄한 1차 진료 시스템 구축’이 첫걸음이라는 신념을 가진 세계보건기구와 철학적 언쟁으로까지 번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의학적 단방약’에 불과한 아동 생존 혁명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보건 시스템 확립이라는 자신들의 임무에서 관심과 재원을 돌리는 것이란 우려였다. 세계 보건 의료계의 해묵은 갈등, 사업 목표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 등과 연관된 문제였다.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하는 유니세프가 달갑지 않은 것도 물론 있었다.

철학적 의견 차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랜트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전제가 너무나 단순해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무시가 깔려 있었다. 사업을 실행할 하부구조 하나 없는 나라에서 예방 접종이라니? 백신을 옮길 도로 사정도, 전기 공급이 안 되는 곳의 백신 보관도, 대규모 사업 비용 마련도, 모든 것이 문제였다. 그랜트의 무모하리만큼 대담한 방식은 “무조건 실패하게 되어 있다”는 불안감으로 번졌다.

 

대중매체를 접촉하고 권력자를 끌어들여 저항을 이겨내다

 

조직 내부의 저항을 뚫고 나갈 힘을 밖에서 찾았다. 그에게는 일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이 필요했다. 자신의 원대한 비전을 담은 열정의 연례 보고서(1982-1983 『세계 아동 백서』)를 만들어 대중 매체와 접촉했다. 2000년까지 예방 가능한 어린이 사망자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매일 2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엄청난 수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고 있고 그것이 막을 수 있는 비극이라는 이야기가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랜트는 더 중요한 부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인도,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 정치 지도자를 만나 지지를 끌어냈다. 교황도 만나 지원을 확보했다. 대놓고 유엔과 사이가 안 좋았던 미국 대통령에게도 약간의 지지를 얻어 냈다. 그랜트의 공세는 유니세프의 접근법에 근본적인 변화를 시사했다. 어린이들의 생존과 건강을 전 세계적인 최우선 과제로 만들려면 힘을 가진 사람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유니세프가 갖고 있는 영향력을 높여 아동 복지에 돈을 쓰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동 생존 혁명, 콜롬비아에서 시작되다

 

그랜트 방식에 대한 ‘편견’ 섞인 갈등은 사업 실행 과정에서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콜롬비아의 예방 접종 캠페인은 지역 사회와 협력하고 기반 시설을 활용함으로써 지역에 기반을 둔 보건 시스템의 기초를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음이 증명됐다. 아동 생존 혁명의 신호탄이 된 콜롬비아의 성공은 그랜트가 상상한 일이 실제로 실현 가능함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 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콜롬비아의 의학계와 보건소는 지금까지 하던 절차를 바꾸라는 데 화를 냈고, 모든 계획이 비현실적이라고 비난했다. 저온 유통 체계가 취약해 실현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랜트는 그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입증했다. 저온 유통 체계가 험한 지형에서 잘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민간 항공 순찰대는 자국 내의 저온 유통 체계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은 보유한 비행기와 헬리콥터를 이용해서 안데스 산맥에 있는 접근이 어려운 곳까지 약을 안전하게 배송할 수 있도록 도왔다. 활주로에 착륙을 하면 아이스박스를 곧 비행기에서 내린 후 노새의 등에 실었다. 거기서부터 산속으로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162쪽)

 

두 번째 날, 콜롬비아의 북동쪽에 위치한 한 도시의 공무원들은 백신 4만 병을 실은 비행기가 출발했다는 무전을 받고 나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행기가 해진 후 도착할 텐데 그곳의 작은 공항 활주로에는 착륙 유도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도시는 높은 산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공무원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무전을 쳐서 지금 당장 자동차와 트럭을 몰고 활주로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차를 끌고 나와 활주로 양 옆으로 줄줄이 차를 주차하고 전조등을 켰다. 마지막 순간에 임시로 만든 착륙 유도등 덕분에 백신을 실은 비행기는 안전하게 착륙해 백신을 내려놓은 다음 곧바로 깜깜한 하늘을 향해 이륙했다. (163쪽)

 

내전을 멈추고 총구를 잠재우며 예방 접종에 나서다

 

그랜트가 재임하던 기간 세계 곳곳에서 내전과 전쟁이 벌어졌다. 취임 초기 캄보디아에서부터 엘살바도르, 아이티,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수단, 유고슬라비아 등이었다. 전쟁의 큰 피해자는 어린이들이다. 또 전쟁의 참화 속에서는 총탄에 맞아 죽는 아이들 숫자보다는 전쟁 때문에 제때 예방 접종을 받지 못하거나 영양 공급이 어려워 죽는 아이들 숫자가 더 많았다. 그랜트는 전쟁을 잠시 멈추고 필요한 구호품과 의약품을 전달하자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예방 접종을 하려고 한창 벌어지던 내전을 멈추려 중재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뛰어난 협상력이 필요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부에서는 이를 정신 나간 짓으로 받아들였다. 그랜트는 엘살바도르 반군과 협상을 위해 가톨릭 교단을 끌어들이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대통령에게는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며 정치적으로 득이 있다고 설득했다. (188쪽)

엘살바도르는 견줄 데 없는 홍보의 기회였다. 전쟁과 죽음, 끊임없는 공포로 갈가리 찢긴 나라에서 성공하면 불가능한 곳이 없었다. “성공만 하면 세계만방에 외칠 수 있는 거죠. ‘보세요. 왜 이 일이 불가능한지 핑계만 대지 마세요.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나라에서도 그 일을 지금 이 순간에도 해내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9쪽)

엘살바도르는 의료 시스템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지역도 많았다. 산악 지역의 도로는 재난에 가까울 정도였고, 어떤 곳은 지뢰가 깔려 있었다. 다리도 많이 파괴된 상태였다. 백신을 저장할 냉장 보존 시설도 없어서 한 맥주 회사에 부탁해 저온 보관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3000명도 더 되는 정부 보건 직원이 전국에 배치되어 예방 접종의 중요성을 부모들에게 설명하고, (...) 사실 일부 지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군대를 피해서 자주 이동을 하는 떠돌이 공동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건 직원들을 경계하는 태도는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어떤 부모들은 자신도 예방 접종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고, 그 중 일부는 의사를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192쪽)

 

“고요한 평화의 날” 2차와 3차는 1차보다 더 성공적이었다. 3월 3일에는 26만 2000명의 어린이가 예방 접종을 했고, 4월 21일에는 24만 1000명이 주사를 맞았다. (…) 1992년 끝난 엘살바도르의 내전이 계속되는 동안 ‘고요한 평화의 날’은 매년 반복되었다. 1년의 다른 날들이 아무리 사악하고 잔혹하고 유혈이 낭자할지라도 이날은 성스러운 날로 지켜졌다. 그 결과 수천수만 명의 어린이들이 목숨을 구했다. (204쪽)

 

그랜트의 대담한 아이디어와 협상력은 내전 중인 엘살바도르에서 전쟁을 멈추게 했다. 이후 수단,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일시 휴전을 한 상태에서 예방 접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경험은 1990년 동구의 민주화 이후 벌어진 참혹한 유고슬라비아 내전까지 이어졌다.

 

현실주의자이자 전략가, 독재자나 살인마와도 협상한다

 

그랜트는 “독재 정부와 일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직원들에게 유니세프는 ‘국제 앰네스티’가 아니라고 상기시켰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깡패 같은’ 무리들과 일하면서 일어나는 도덕적 갈등을 명료하게 정리했다. “주어진 정부와 일해야만 한다. 거기서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1984년, ‘국경 없는 의사회’는 대기근을 몰고 온 에티오피아 멩기스투 정권이 수십만 명의 주민을 이주시켜 전염병 도는 수용소에 감금한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후 그곳에서 추방당했다. 그들은 이후 “멩기스투와 손잡고 일하는 것은 국민을 탄압하고 대량 학살을 일삼은 독재자의 정책을 합법화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유니세프를 비롯한 다른 구호 단체들을 맹렬히 비난했다.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기 극도로 꺼리며 유니세프의 ‘본분’에 집중한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측근들이 밝힌 것처럼 그랜트는 독재자 멩기스투를 “구애하듯” 대했고 “죽마고우처럼 친해진” 후 결국 반군이 득세하고 있던 지역에서 절박하게 필요로 하던 구호물자를 전달하도록 허락받았다.

독재자를 자기 일에 끌어들여 손잡고 일하는 게 ‘그의 전공’이 된 데에는 또 다른 전략적 이유가 있었다. 그랜트는 “유니세프 관계자와 기타 기관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악마와 손잡는”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독재자는 독재자지.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이긴 해. 그래도 독재자들은 대규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아주 끝내 주지. 그 사람 하나만 잡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온 나라를 커버할 수가 있거든.” (136-149쪽)

 

탁월한 협상력과 추진력, 친화력으로 전 세계를 누비다

 

그랜트는 각국 지도자를 만나면서 자기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을 연마했다. 이득이 된다고 설득해야 하는 지도자인가, 이웃나라와 경쟁심을 부추겨야 효과적인가, 도덕심을 자극하면서 설득해야 하는 지도자인가를 파악했다. (158-159쪽)

그는 지도자들의 동정심이나 공감력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도자가 염려하는 바나 관심사를 집어낸 후 유니세프의 계획이 거기에 업혀 가도록 했다. 이런 방식을 전 세계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응용했다. 성장표, 소아마비 점적기, 경구 재수화염 봉지 등 소품을 가지고 가는 것은 물론, 그 나라 어린이 관련 통계 지식을 당사자들보다 더 세세하게 무장하고 나타났다. (221쪽)

그는 예방 접종 사업으로 세계를 누볐다. 잔인하기로 소문난 시리아 대통령을 만나서 식민 통치국이었던 터키의 예방 접종률과 비교하는가 하면, 브라질에 가서는 산에 사는 원주민인 볼리비아도 하는 일을 못하느냐고 경쟁시키는 식이었다. 중국을 상대해서는 대국이 모범을 보여 줘야 한다면 자부심을 부추겼고, 모로코에선 식민 통치국이었던 프랑스 어린이보다 열 배나 많이 죽는다는 말로 사업에 추진력을 불어넣었다.

유니세프 사업을 홍보하는 일이라면 부끄러움도 몰랐고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부적절해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도미니카 공화국 공식 현지 시찰 후 만찬에서는 대통령과 군 장성들 옷에 글자가 새겨진 빨강 파랑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며 아동 생존 혁명 오성 장군으로 임명한다는 농담도 서슴지 않았다. 잘 봐 줘야 눈치 없는 행동이고 무례하기까지 한 이런 돌발 행동에도 그의 동기가 너무 뻔했기에 그를 비판하는 사람마저 그 진심을 나무라지 못했다. (223쪽)

그랜트는 일 년의 반 이상을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유니세프 현지 시찰 문화를 바꿔 놓았다. 도착에서 출발까지 24시간 꽉 찬 일정이었고 현지 시찰 마지막은 늘 밤새워 감사 편지를 썼다. 격식을 갖춘 외교적 어조였지만 독촉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방문에서 논의한 내용, 편지 수신인이 약속한 사항, 실천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상기시키는 편지였다.

1986년 말에 접어들면서 아동 생존 혁명은 개발 도상국에서 가속이 붙었고, 반대파와 비판가들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었다. 예방 접종 운동에는 100여 개 달하는 정부, 400개 이상의 비정부 단체, 전 세계 후원자, 각계각층 자원 봉사자 등이 힘을 합쳐 ‘어린이 대연맹’이 이루어졌다. 유니세프는 1980년 이후 예방 접종률은 두 배 이상 증가해 40퍼센트를 넘었고, 경구 재수화염은 여섯 배 증가해 매년 150만 명이 생명을 구했다고 추산했다. (238쪽)

 

‘어린이를 위한 세계 정상 회담’, 유엔과 국제 개발 역사의 분수령이 된 순간

 

1990년, 2년여에 걸친 계획과 협박, 막후 조정 등을 거쳐 그랜트는 결국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어린이를 위한 세계 정상 회담이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초대를 수락한 국가수반의 수가 무려 71명이나 되었고, 거기에 더해 다른 88개국에서도 고위급 대표단을 보내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침 8시 30분이나 9시에 도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참석을 한 모든 지도자가 엄격한 의전에 따른 국빈 대접을 기대하는 상황에서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에게 새벽 6시 30분에 도착해 줄 수 있는지 요청했다. 철의 여인은 그 부탁을 받아들였고, ‘매기와의 아침식사’라는 특별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수많은 지도자가 매기와 대화를 나누려고 소동이 일었다. 개회를 하기 전 세계 지도자들은 71명 전원이 들어가는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모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무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눈을 감지 않은 상태를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그 사진에 찍힌 사람 중 절반은 독재자였다. 세계 어린이 정상 회담은 유니세프가 가장 빛난 순간이었다. 바로 유엔과 국제 개발 역사의 분수령이 된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 후 4년 동안 그는 각국의 발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100명도 넘는 대통령과 총리 들을 만났다. 누구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도록 둘 수는 없었다. (348-366쪽)

‘어린이를 위한 세계 정상 회담’은 유니세프가 어린이의 생존과 권리를 문명과 시대의 주제로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한 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1980년 짐 그랜트가 총재로 취임한 후 10년이 지났을 때였다. 무려 500만 달러가 들어가는 이 행사는 큰돈을 헛되게 쓴다, 일반 대중의 현실과 동떨어진 위선적인 말잔치다, ‘돈 걷는 회의’가 될 거라는 우려와 비판을 뒤로 하고 유니세프와 그랜트가 이룬 가장 빛나는 성취였다.

이때 비준된 유엔 아동 권리 조약은 ‘어린이 대헌장’ 역할을 하면서 각 나라에 아동의 생존, 복지, 인권의 기준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모임에서 정한 어린이 사망, 빈곤, 기타 질병에 대처하기 위해 목표를 정하고 시한까지 못 박음으로써 새 기준이 마련되었고 마침내 유엔의 밀레니엄 개발 목표를 세우는 데 영감을 주었다.

정상 회담은 “짐의 미친 생각이라고 하면서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세계 정상 회담을 두고 수량화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는 것은 ‘나쁜 아이디어’라고 완강히 버티며 일의 진전을 막는 외교관도 있었다. 하지만 정상 회담을 소집할 자격조차 없는 유니세프는 이 이벤트를 성공시켰다. 1992년 최대 규모의 국가 및 정부수반 모임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이었다.

 

그랜트에 대한 평가, 모든 것이 다 괜찮지는 않았다

 

그랜트는 재임 중 재정 관리 문제와 직접 유니세프로 영입한 직원 관련 문제에는 유독 완강한 태도를 보이며 외면했다. 측근들의 충언마저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길에 “주의를 분산시키는 문제는 그냥 털어내 버리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임기 후반 짐 그랜트와 그가 이끈 유니세프에 대한 보고서가 나왔다. 1986년 유엔 감사위원회의 감사 보고서는 그랜트와 유니세프의 수많은 재정적 실수와 변칙적 관행을 비판했다. 예산 전용 같은 문제였다. 심각한 위법은 아니지만 유엔의 관료주의적 분위기에선 위험신호였다. 하지만 유엔의 관료적 시스템은 긴박한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는 구조다. ‘범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카야얀은 직원들에게 현금이 든 갈색 종이봉투를 주곤 했다. 현장에서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예방 접종 사업 도중 백신을 실은 트럭이 진흙탕에 박혀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다. 트랙터가 필요하다. 근처 농부에게 트랙터를 빌릴 수 있는지 묻는다. 그 농부는 당연히 보수를 요구할 것이다. “어떻게 하겠어요? 수표를 끊어 줘요? 카드를 긁어요? 사람들한테 비웃음이나 사라고요?” 물론 현금을 줘야 한다. 트럭을 제시간에 목적지로 보내서 백신이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199쪽)

 

2016년 3월 18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나는 유엔을 사랑한다. 하지만 유엔은 실패하고 있다(I Love the U.N., but It Is Failing)’는 제목의 앤서니 밴버리 전 유엔 사무차장보의 칼럼에도 나온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해 인류학자를 고용해야 하는데 유엔의 규칙 때문에 편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1994년 유니세프 회계 감사 과정에서는 케냐 나이로비의 재정 스캔들이 드러났다. 규모가 엄청났다. 총 1000만 달러의 회계 부정 중 100만 달러는 노골적인 사기 행위로, 900만 달러는 “심각한 부실 경영”이라 추정되는 과정에서 악용된 것으로 결론 났다. 이 사건은 그랜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유니세프의 위상도 크게 흔들렸다. 짐 그랜트가 장려한 위험 부담 문화가 도마 위에 올랐고 부정행위의 징후에 제때 대처 못한 감독 관리 소홀이 문제가 됐다. (441쪽)

또 하나는 유니세프 이사회의 요청으로 진행된 부즈 앨런 해밀턴의 경영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유니세프의 성취를 높이 평가했지만 “직원들이 동조할 수 없는 가치 체계”와 “신뢰를 잃은 인사 관리” 등을 문제로 들었다. 또 세계 공통의 목표에 대한 불만, 책임 소재 문제에 대한 우려, 재정 관리의 불투명도 지적했다.

그랜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부 이사회 임원들의 보복 행위라고 일축”했다. 그랜트는 “직원들을 한계 이상으로” 밀어붙였고 대면하기 싫은 “현실은 무시”했으며 “일부 직원을 노골적으로 편애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경영 자문사는 그런 일이 빚어진 상황과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유니세프와 그랜트가 어떤 일을 해냈고 그 결과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해가 부족했다고 평가한다. (442쪽)

1995년 그랜트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외부 전문가들이 그가 이룬 성과를 평가하는 보고서를 냈다. 예방 접종 사업이 “대중과 정치권의 관심”을 모으고 “놀랄 만한 숫자의 아이들을 질병과 죽음에서 구한” 것은 평가했다. 하지만 세계적 규모의 노력이 “지나치게 단기 목표에 집중해서 장기적인 지속성을 해쳤다”고 지적하며, 결론적으로 예방 접종 사업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고 발표했다. (470-471쪽)

이 평가를 두고 그랜트의 지지자들은 “지속 가능성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현실 안주와 동일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방 접종률에서 큰 도약은 소소한 증가를 조심스럽게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영향이 크다고도 했다. 또 단기 목표에 치중해 1990년 이후 수치가 떨어졌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많은 사람이 지지했던 지속 가능성보다 더 나은 결과를 냈다고 반박한다. (471-472쪽)

 

짐 그랜트의 리더십,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유니세프는 그랜트의 아동 생존 혁명 덕분에 그의 총재 재임 시절 2500만 명의 어린이가 생명을 건졌다고 추산한다. (465쪽) 그의 아동 생존 혁명으로 1980년 16-17%였던 예방 접종률은 1991년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내는 6가지 질병의 예방 접종률은 80%를 넘었다. 예방 접종으로 매년 300만 명, 경구 재수화염으로 100만 명이 목숨을 구한 것이다. (367쪽)

유니세프는 짐 그랜트가 떠난 후 어느 누구도 그에 버금가는 에너지나 선명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리더십은 추락했고 유니세프의 혈기 왕성하던 추진력은 흔들렸다. 아동 사망률 감소 속도는 떨어졌고, 예방 접종률은 지지부진해졌다. 유니세프는 아동 생존 문제에서 선구자적 지위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 유니세프의 리더십은 짐 그랜트의 리더십이었던 것이다.

그의 신념은 분명했다. 인류 발전의 혜택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랜트는 그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측정하고 동원 가능한 모든 것을 끌어들여 힘 있게 추진했다. 예방 가능한 아이들을 죽음을, 당연시 여기고 무감각해져 버린 아이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그것으로 세상을 바꾸었다.

그의 리더십은 단순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현실에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랜트는 유니세프 재임 기간 수화물 없이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비행기에 올랐고, 호텔 세면대에서 구김 가지 않는 양복을 직접 빨아 입으며 세계를 누볐다. 추간판 헤르니아로 인한 허리 통증으로 방 한가운데 드러누워 회의를 진행했고, 비행기 복도에 누워서 가기도 했다. 휴일에 회의하기, 새벽까지 퇴근시키지 않고 부려먹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오지로 발령 내기 등 그의 순수한 열정은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짜증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직원들 중 많은 수가 어렵고 짜증나는 긴 근무 시간을 견디고 나면 그 끝에는 측정 불가능한 보람이 기다린다는 것을. 그랜트는 유니세프 조직에 대한 새로운 신뢰를 불어넣었다. 그들은 함께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세계 보건과 어린이 복지의 지형을 넓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넘쳤다. 많은 사람이 그랜트 같은 사람과 일하는 것,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시대에 따라 선호하는 리더의 유형은 변하게 마련이다. 요즘 같은 시대엔 ‘불도저’ ‘하면 된다’ ‘앞으로 전진!’ 같은 이미지의 리더는 ‘비호감’ 정도가 아니라 ‘극혐’의 대상이 되었다. 목표 지향적인 성과주의자라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권위주의자라거나 지나친 열정으로 주변을 못살게 구는 상명하달식 리더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경제지 <포춘>은 매년 ‘위대한 세계 지도자 50인’의 명단을 발표한다. 누가 위대한 지도자인가 하는 물음은 기준에 따라 제각각일 것이다. <포춘>은 선정 기준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희망을 주는 능력, 둘째 따르는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결속시키는 능력, 셋째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반대 진영의 논리를 포용하는 능력이다. 짐 그랜트는 <포춘>의 선정 기준에 들어가는 리더인가? 아니면 전형적인 구시대적 리더인가? 짐 그랜트의 방식, 리더십, 업적을 평가하려면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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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소개

저자 : 애덤 파이필드

역자 : 김희정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시통역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가족과 함께 영국에 살면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채식의 배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거짓말쟁이 호머 피그의 진짜 남북전쟁 모험』 등을 비롯해 ‘견인 도시 연대기’ 시리즈인 『모털 엔진』 『사냥꾼의 현상금』 『악마의 무기』 『황혼의 들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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